104. 조선의 침의(鍼醫) 허임 — 그는 누구인가?

 사암침 특별연재 1.— 허임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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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ChatGPT 생성 이미지

조선의 침의(鍼醫) 허임 — 그는 누구인가?

조선 시대 의학사를 살펴보면 허준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지만, 침과 뜸의 역사에서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침의(鍼醫) 허임(許任)입니다.

허임은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침구 의학자로, 실제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침과 뜸의 치료법을 정리한 『침구경험방(鍼灸經驗方)』을 남겼습니다. 그의 의술은 단순한 이론에 머무르지 않고 수많은 환자를 직접 치료하면서 축적한 경험을 토대로 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

우리나라 침구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허임(許任)입니다.

허임의 정확한 출생연도와 사망연도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성장 과정에 관한 기록 역시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가 단순히 후대에 만들어진 전설적인 침의가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선조실록》과 《광해군일기》에는 허임이 실제로 왕에게 침을 놓았던 장면이 기록되어 있으며, 그가 남긴 《침구경험방(鍼灸經驗方)》도 오늘날까지 전해집니다. 

사암침 연구소는 104회부터 ‘허임을 말하다’ 특별연재를 시작합니다.

전설을 덧붙이기보다 남아 있는 기록을 따라가면서, 조선의 침의 허임은 어떤 사람이었으며 어떤 침술을 사용했고, 그의 경험이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지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


(1) 허임은 누구인가?

1. 출생과 성장 과정

허임의 본관은 하양(河陽)입니다.

그의 출생연도와 사망연도는 정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허임의 성장 과정 역시 상세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허임의 아버지는 양양 관노 출신으로 악공에서 장악원 전악까지 오른 허억봉(許億逢, 표기 이형 존재)이었고, 어머니 역시 사비 신분이었습니다. 당시의 엄격한 신분제 사회를 생각한다면 허임에게 출세의 길은 처음부터 넓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허임이 훗날 왕에게 침을 놓고 지방 수령까지 지내게 됩니다.

그 힘이 된 것이 바로 침술이었습니다.


2. 왜 의술을 배우게 되었을까?

허임 자신의 기록에서 매우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습니다.

《침구경험방》의 서문을 근거로 한 연구에서는 허임이 어린 시절 부모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의술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전합니다. 

처음부터 명예나 벼슬을 얻기 위해 침을 배웠다기보다는 가족의 병을 고치고 싶은 마음에서 의술에 접근했다는 것입니다.

다만 그의 스승이 정확히 누구였는지, 어떤 교육 과정을 거쳤는지까지 확정할 만한 자료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부분을 후대의 이야기로 채우는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2) 임진왜란과 침의 허임

1. 전쟁 속에서 활동한 침의

허임은 임진왜란 이전부터 침의로 활동했던 것으로 파악됩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조선의 의료 환경 역시 극도로 어려워졌습니다. 전란 속에서는 약재를 구하기 어렵고 부상자도 많았습니다.

이 시기 허임은 당시 왕세자였던 광해군을 수행하며 침의로 활동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허임이 광해군의 인후 증상과 편두통 등의 치료에 참여했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한 후대의 전승만은 아닙니다.

1612년 《광해군일기》에는 허임을 명확하게 “침의(針醫) 허임”이라고 기록하면서, 전란 중 광해군을 호종한 공로로 품계를 올리라는 왕의 명령이 남아 있습니다. 

허임이 왕실과 함께 움직였던 침의였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입니다.


(3) 허준과 허임이 한자리에 있었다

1. 선조의 편두통

허임을 이야기하면서 매우 흥미로운 기록 하나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1604년 9월 23일 《선조실록》의 기록입니다.

그날 밤 선조의 오래된 편두통이 갑자기 심해졌습니다.

왕은 침 치료를 받을 것인지 의관들과 논의했습니다. 이 자리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허준(許浚)도 있었습니다.

허준은 자신은 침놓는 법을 알지 못한다고 밝히면서 침의들의 의견을 왕에게 전달합니다. 그러면서 허임이 평소 말하던 치료 원칙까지 언급합니다.

그리고 실제 침 치료가 결정되자 남영이 혈자리를 정하고 허임이 침을 들었다고 《선조실록》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장면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허준과 허임이 같은 왕실 의료 현장에서 각자의 전문 영역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허준이 《동의보감》으로 대표되는 조선 의학의 거대한 인물이라면, 허임은 침구 임상에서 두각을 나타낸 전문 침의였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4) 신분의 벽을 넘어선 침술

1. 지방 수령까지 오르다

허임은 침술을 인정받으며 점차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됩니다.

광해군 때에는 영평현령·부평부사 등 지방관으로도 임명되었습니다.

1616년 《광해군일기》에는 왕의 특별한 명으로 허임을 영평현령에 임명했다는 기록이 명확하게 남아 있습니다. 

1617년에는 부평부사였던 허임이 왕에게 침을 놓은 뒤 다시 임지로 돌아가는 장면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사관은 허임을 악공의 아들이라고 언급하면서도 그의 침술이 뛰어나 임금의 총애를 받았다는 사실 자체는 기록했습니다. 

당시 조선 사회의 신분 질서를 생각하면 상당히 이례적인 상승입니다.


2. 그러나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허임의 출세를 모두가 반긴 것은 아니었습니다.

《광해군일기》에는 허임의 신분과 관직 상승을 매우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관의 평가도 남아 있습니다. 지방관으로서의 행정에 대한 비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허임을 소개하면서 그를 무조건 영웅으로 미화할 필요도 없습니다.

뛰어난 침의였다는 기록과 정치·행정적 평가를 구별해서 보는 것, 이것이 역사 속 허임을 제대로 바라보는 방법일 것입니다.


(5) 왕이 찾았던 전문 침의

허임의 왕실 활동은 한두 번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1619년 《광해군일기》에는 왕의 치료에 참여한 여러 의료인에게 포상을 내리면서 침의 허임에게 말을 하사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이런 기록을 종합하면 허임이 단지 우연히 한 번 왕에게 침을 놓은 사람이 아니라, 상당한 기간 왕실 의료에 참여한 전문 침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실록이 허임을 평가하는 방식입니다.

그를 비판하는 사론이 있는가 하면, 정작 왕의 병이 생기면 다시 허임이 등장합니다.

그만큼 침술이라는 전문 기술이 그의 사회적 지위를 만들어준 중요한 기반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6) 허임이 남긴 《침구경험방》

허임이 오늘날까지 기억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침구경험방(鍼灸經驗方)》입니다.

이 책은 허임이 자신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침구의 경락과 혈자리, 치료 방법 등을 정리한 침구 전문서입니다. 특히 보사법(補瀉法)에서 독자적인 내용이 나타난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짚어둘 것이 있습니다.

자료에 따라 《침구경험방》의 간행 연도가 다르게 적혀 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일부 설명에는 1664년 간행으로 되어 있는 반면, 한국한의학연구원의 고서목록과 국사편찬위원회가 제공하는 조선시대 서적 간행 자료에는 1644년, 인조 22년 호남관찰영 간행으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연재에서는 단순히 한 연도를 단정하기보다 판본과 간행 기록의 차이를 확인하면서 다루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료에 근거해 허임을 살펴보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7) 허임은 왜 중요한가?

1. 자신의 임상 경험을 기록으로 남겼다

허임의 가장 큰 가치는 단순히 “침을 잘 놓았다”는 데만 있지 않습니다.

수많은 환자를 치료하면서 얻은 경험을 책으로 정리하여 후대에 남겼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구전으로만 전해졌다면 허임의 침술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상당 부분 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침구경험방》이 남았기 때문에 우리는 수백 년 뒤에도 허임이 침구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연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 조선에 침구 전문 임상가가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동아시아 전통의학을 이야기하면 중국 의학이 먼저 떠오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조선에서도 기존 의학 지식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임상 경험을 축적하고 정리한 침구 전문 의료인들이 활동했습니다.

허임은 그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3. 사암침을 공부하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이유

허임의 침법과 사암침법을 곧바로 같은 계통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현재 확인되는 사료만으로 허임의 침법이 사암침법으로 직접 이어졌다고 말할 근거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두 전통 모두 조선이라는 공간에서 발전한 침구의 역사라는 점에서 함께 살펴볼 가치가 큽니다.

앞으로 이 특별연재에서는 허임의 보사법과 사암침의 보사·배혈 원리를 각각 살펴본 뒤,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 자료에 근거하여 비교해보겠습니다.


(8)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

허임을 다시 살펴보려는 이유는 과거의 인물을 무조건 높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먼저 정확하게 알아야 세계에도 제대로 소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허임에게는 화려한 전설보다 더 강한 것이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그의 이름이 남아 있고, 왕에게 침을 놓은 구체적인 장면이 남아 있으며, 무엇보다 자신의 임상 경험을 담은 《침구경험방》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기록을 하나씩 읽어나가는 것이야말로 허임을 세계에 소개하는 가장 좋은 출발점일 것입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

우리가 미처 깊이 들여다보지 않았던 조선의 침의 허임.

이제부터 그의 침술과 경험을 기록을 따라 하나씩 만나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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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침구경험방》 — 허임이 남긴 조선 침술의 기록

허임은 어떤 내용을 《침구경험방》에 남겼을까요?



다음 편에서는 책의 구성과 특징, 허임의 임상 경험이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참고자료


1.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선조 37년(1604) 9월 23일 — 선조의 편두통과 허임의 침 치료 기록

https://sillok.history.go.kr/id/kna_13709023_004


2.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 광해군 4년(1612) 8월 9일 — 침의 허임의 호종 공로와 품계 관련 기록

https://sillok.history.go.kr/id/kob_10408009_001


3.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 광해군 8년(1616) 1월 23일 — 허임의 영평현령 임명 기록

https://sillok.history.go.kr/id/wob_10801023_012


4.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 광해군 9년(1617) 6월 21일 — 부평부사 허임의 침 치료 관련 기록

https://sillok.history.go.kr/id/koa_10906021_001


5.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허임(許任)」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3122


6.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침구경험방(鍼灸經驗方)」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8564


7.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학고전DB

《침구경험방》 및 관련 고의서 자료

https://mediclassics.kr


※ 이 글은 조선시대 침구 의학의 역사와 문헌을 소개하기 위한 일반적인 학술·건강 정보입니다. 현대의 질환에 대한 진단이나 치료 지침이 아니며, 침 치료는 반드시 자격을 갖춘 전문가에게 받으시기 바랍니다. 자가 자침은 권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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